ONE DAY

PARK SUNGHO
죽음을 앞에 두고 지나간 인생의 주마등을 경험했다.
생()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말더듬
1. 특정 상황 불안장애

어찌하다 반장이 되어버린 나는 우려스러움에 빠진다. 내게는 특정 상황 불안장애가 있다. 그 발단(發端)은 이랬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당신의 한스러움을 나를 통해 풀어보려 하신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나는 책상에 앉아 국어책을 읽는다.

"기영아 놀자, 순이야 가자~" 책을 읽다 글자 한자라도 틀리면 아버지는 어릴 적 보았던 동네 구렁이 몸통만 한, 그 시절 여느 부모님이 그랬듯 '사랑의 매'라고 적힌 그 막대기로 아낌없는 사랑을 내 머리에 부어 주셨다.

청덕국민학교 입학 후 떠오르는 추억은 머리가 아파 엄마 등에 업혀 등교하고 교실에선 제대로 앉기 힘들어 나무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수업을 들었던 기억만이 새록하다.

10월 말, 산수를 풀다 조는 내게 아버지는 옷을 벗으라 하시더니 단수에 대비해 준비한 빨간 다라이에 나를 넣으시고 빼시더니 물으신다.

"이제 안 졸리지?"

"네"

"다시 산수 풀어라"

이런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가 싫었던 1학년 어느 등교 날, 학교 정문 앞에서 난 북한산 기슭으로 올라가 누워 본 햇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현실 도피는 잠밖에 없기에 말이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면 하교하고, 다시 등교하면 산기슭에서 잠을 청하기를 일주일. 어느덧, 산기슭에 활짝 핀 진달래(철쭉)가 이쁘기도 하고 배가 고파 따 먹고 하교하던 중 배가 몹시 아파지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 구토하고 쓰러질 무렵 엄마가 발견해 응급조치를 받고 간신히 살아난 듯하다.

학교를 보이콧하던 나는 철쭉을 진달래로 착각하고 먹은 대가를 지불하고 난 후 다시 조신하게 등하교를 하였고 그 즈음 내게 특정 상황 불안장애가 발생했다.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오실 때면 현관에서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아버지 소리를 하는 순간 '아아아아버지'로 첫 음절이 반복되는 연발성 말더듬이 나온 것이다. (아직 자신의 말더듬을 자각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서 보여지며 주위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한다.)

순간, 내 빰에 아버지의 싸대기가 꽃히더니 다시 해보라 하시지만 여전히 '아아아아버지'로 첫 음절이 반복된다.

학교도 싫었지만, 공무원 아버지의 칼퇴 하시는 그 시간, 맞는 싸대기가 싫었고 어슴푸레해지는 하늘도 싫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가을 향내가 불어오던 그날, 난 아버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출을 결심한다.

집 근처 언덕에 숨어 저 멀리 아버지가 퇴근하시는 모습을 본 나는 '아 몰라 될 대로 돼' 심정으로 언덕에 누워 그냥 잠을 청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의 도피, 그건 잠과 책이었다. 처음으로 동화책을 받고 다락방에 올라가 책 속에 빠진 추억은 내 어릴 적 목마름을 적셔주는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자다 눈을 떠보니 안방이다. 부모님이 언덕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잠든 채 안아서 방에 누이신 듯하다. 아버지는 깨어난 나를 보시더니 싸대기를 한 대 후려치시더니 자라고 하신다.

국민학교 5학년 국어시간이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하시더니 책을 읽으라 하신다. 그 순간 선생님의 말씀에 아버지의 권위가 투영되면서 난 70명 반 아이들 앞에서 더듬거리며 책을 읽게 되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놀랐다. 평소 밝은 성격에 말을 잘 하는 친구가 더듬거리는 상황에 교실은 내 더듬거리는 소리 외에 적막(寂寞)처럼 고요해진다. 이런 상황은 내게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를 강화시켜 말더듬이 더욱 심해졌다.

이 후 아버지의 권위가 투영되는 상황이 오면 난 특정 상황 불안장애에 빠져 말을 더듬게 되었다.

2. 진리가 자유케하리라~

그 시절 수업 시간엔 반장이 "차렷! 선생님께 경례" 구령을 하면 전체 학생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는 의례가 매 수업마다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인사 때마다 말을 더듬던 내가 아버지 같은 권위를 가지신 선생님 앞에 반을 대표하여 매 수업 시간 구령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교련시간도 문제다. 매주 2시간 교련시간에 반을 대표하여 상황 보고를 해야 하는 것도 반장의 몫이다.

이럴 때면 내가 말더듬는다는 의식을 지우기 위해 맨살을 꼬집으며 그 고통을 틈다 더듬지 않고 구령과 상황 보고를 넘어가던 상황을 엄마가 알게 되면서 나를 말더듬 학원에 등록시키셨다.

(친구들은 내가 매 시간 이런 상황적 고민이 있는 걸 몰랐을 것이다. 매번 힘들었지만 내 살을 꼬집으며 잘 넘어갔다.)

서울역에 위치해 있는 학원에 첫 수업을 받는 날이다. 강사분께서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신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강동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성호라고 합니다.

반에서 반장을 맡고 있는데 제가 말더듬이 있어 이렇게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인사말을 듣는 수강생들의 눈빛은 이런 마음을 나타내는듯했다.

"뭐야? 장난해? 그렇게 또박또박 여유 있게 말을 잘하는데 말더듬 학원엔 왜 왔니?"

첫날 수업을 마치고 학원 옆 호프집에서 수강생들과 맥주 한 잔을 했는데 모든 분들의 질문이 왜 학원에 등록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저간(這間)의 사정을 말씀드렸고 그분들은 나를 신기하듯 쳐다보았는데 알고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수강생분들은 일상 대화에서 말을 더듬는 분들이셔서 그런 것 같다.

특수 학원이라 수업료가 매우 비쌋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달 수업을 들어도 내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기에 추가 수강은 등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94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임재하고 난 후 난 '특정 상황 불안장애'에서 자유케 되었다.

베니 힌 목사님처럼 하나님의 치유로 말더듬을 고친 것은 아니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 분노, 원망 등이 복음 안에서 그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실천한 순간 특정 상황 불안장애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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