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목사님과 동행하여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목사님이 ○○ 자매와 상담하시는 동안 나는 차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차창 너머 노는 아이들을 보는데 문득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망설임 끝에 다가갔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복음을 전하고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기를 권면한 뒤 다시 차로 돌아오는데, 한 아이가 나를 쫓아왔다.
"아저씨, 제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정말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나요?"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기도라면 반드시 들어주실 거야. 어떤 기도를 하고 싶니?"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다시 함께 살고 싶어요."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나 역시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던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의 갈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아이를 차로 들여 손을 꼭 잡고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넌 이름이 뭐니? 이 학교 학생이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아이가 마침 목사님과 상담 중인 ○○ 자매의 반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축복했다.
"○○야, 네가 구원받은 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 아저씨가 부탁해 볼 테니,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서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거라."
나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축복하며 보내며 이 아이의 구원과 예비된 사역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주일날, ○○ 자매를 만나 아이와의 만남을 전하며 말씀으로 잘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자매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들려온 대답은 허망했다.
"○○ 자매, 요즘 ○○이 잘 지내나요? 말씀은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어머, 제가 너무 바빠서 그 아이와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평소 소통이 적은 자매였기에 긴 말 없이 자리를 마쳤지만, 돌아오는 길에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씨부레, 이건 아니지. 성령님, 이게 말이 됩니까? 단 10분이라도 그 갈급한 영혼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 아닙니까?
거창한 노방전도도 아니고, 자기 반 학생이 하나님을 갈망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다니요.
예배 시간에 복음을 위해 목놓아 기도하고 찬양하던 모습은 다 무엇입니까? 삶의 현장에서는 그 몇십 분조차 내어주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일전에도 복음 세미나를 다녀온 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제안을 피곤하다며 거절하던 이들이 떠올랐다. 반복되는 무관심 앞에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는 속상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